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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 합작 고딕호러
    합작 고딕호러
  • 2021년 10월 30일
  • 9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0월 31일









매번 눈을 뜨면 보이던 장식 없는 허연 천장 대신 누군가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뱀처럼 목을 감싸 쥐고는 힘을 더해온다. 목울대를 정확히 눌러오자 평온하기만 하던 호흡이 죄어오며 다소 가파르게 꺾인다. 목이 졸리는 이의 가슴팍이 짧게 오르락 내리락거리기 시작했다.



"깨어나면 ……이고,"

"……. …."



누군가 그리 속삭인다. 고개를 좀 더 숙이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사내의 볼을 간지럽혔다. 제 몸을 누르고 있는 무게는 별것 아니어서, 평소였다면 밀치고 일어설 수 있을 정도였을 텐데 지금은 도무지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꼭 물에 잠긴 사람처럼 헐떡이는 소리조차 옷깃 부스럭이는 소리에 먹혀들어 갔다. 부그르륵. 부그륵. 그렇게 은밀하게,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너무나 손쉽게,


"이 ……건 ……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가 그렇게 당신을 죽였다.

모든 것이 어렵지 않아, 본디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으로 전부터 정해진 것만 같았다.


사내는 그렇게 꿈에서 깬다. 짐승에게 할퀸 것 같은 눈가의 상처가 어쩐지 따끔하니 아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인데, 그럴 리가 없지. 재수 없는 일은 겹쳐 일어난다고 하던가? 꼭 좋지 않은 꿈을 꿀 때마다 환상통이 덮쳐오곤 한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찼기에 한낮에도 어두워 저택의 사람이 아닌 이상 들어갈 일 없는 숲을 뒤로 두고 우뚝 선 그 건물은 우아해 보이기도 했으며 어딘지 고루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꽤 떨어진 곳에 있어 늘상 조용한 곳.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저주받은 금붙이, 자살한 영주, 초상화에 들러붙은 유령 이야기 같은 것들 따위를 기대하고 마을 어른들을 붙잡고 무어든 좋으니 알려달라 졸라댄 적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그럴싸한 화젯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런 것들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꾸지람을 하거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싶어 했다. 아이, 아저씨는 잔소리꾼이야! 결국 빽!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는 아이들은 제 또래 애를 잡아 다른 놀이를 하며 자신이 잠깐 그 저택에 대해 궁금해했던 것조차 잊었다.


고작 그 정도의 무게감.

그것을 알기에 저택에서 나온 시종들 또한 필요한 일만 끝마치면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번 심부름 담당이 된 사내라 해서 별 다를 바 없었다. 한 품에 가득 든 물건들을 마차에 싣고, 그걸로도 모자라 또 한 번 틀린 것이 없나 확인했다. 살아오기를 쭉 저택에서 살아온 시온은 다른 사용인들보다 세상 물정에 어눌한 구석이 있었고, 본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뽑아 보낸 것은 저택의 주인의 지명이었다. 가끔은 바깥바람도 쐬어야지, 하는 것이 이유였다.


그 저택에 머무는 사람들이란 주인을 닮아 하나같이 조용하여 교류가 활발하지도 않아 서로의 과거를 잘 몰랐지만, 개중 시온은 두드러진 편에 속했다. 세간에 돌고 있는 신빙성 없는 이야기의 말머리와 같이 자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저택의 주인, 헤베가 한쪽 눈에 상처를 입은 소년을 데려와 모두에게 인사를 시키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오늘부터 여기서 지낼 거란다. 금방 클 테니 잘 가르쳐주렴.' 고개를 숙인 이들이 의아해하는 눈짓을 서로 교환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은 태평하게 '그래, 빗질부터 가르쳐도 좋겠다. 그건 별로 힘들지 않잖아.' 라는 말이나 붙일 뿐이었다.


'…좋아. 빼놓은 건 없군.'



간밤에 잠을 설친 터라, 혹여 무언가 실수를 할까 싶어 점검하는 데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썼다. 숙였던 허리를 편 순간, 저 먼발치에 있던 아이들 두엇이 도망가는 듯 빠르게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저것 봐, 한쪽 눈이 없어! 저택의 수하인이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여기 오면 어떡해!" 시온은 그것들을 모두 모른 척했다. 겸연쩍은 얼굴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안대천이나 갉작이다 관뒀다. '이것 보세요. 헤베, 바깥 공기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그리곤 마차에 타고 마을을 벗어난다. 어차피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이쪽도 없긴 했다. 첫 마을 심부름이랍시고 특별할 리가 없다. 이방인들은 서로가 낯설기 마련이었다.






꿈을 꾼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죽는 꿈.


시야가 바뀌어, 누군가가 누군가의 위에 올라타는 것을 구석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침실로 미끄러지듯 다가가는 것이 꼭 뱀처럼 간악하다. 누군가를 해칠 마음을 먹은 것들은 왜 하나같이 이리도 차갑게 굳고, 흉흉해 보인단 말인가? 검은 머리카락을 밤처럼 두른 여인이었다. 곤히 잠든 사람의 위로 올라가 한참을,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목소리를 내어 부르거나, 손으로 어깨를 쥐고 흔드는 법을 잊은 사람마냥. 마치 정해진 시간 안에 눈을 뜨지 못하면 내가 널 죽이겠노라 제멋대로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리눌린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으나, 어렴풋이 그것을 자기 자신이라 여긴다. 그만둬. 속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긴 했으나, 이번에도 사내는 무력하게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 달싹하지 못하고 그 모든 행패들을 눈에 담았다. 잠든 누군가의 숨소리가 평온하여 비현실적이었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그러고 있지 마!



"……, …꿈이고."



하얀 팔이 유령처럼 다가와 사내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눈을 감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는 그가 가여워서 달래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은 이 모든 걸 똑바로 보라고 재촉하듯 품에 안듯 감싼다.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한패로 끼인 것 같은 불쾌함에 치를 떠는 것과 거의 동시에, 침대에 올라탄 사람 그림자는 날카롭게 갈린 단도를 꺼내 든다. 그리고 위로 쳐들었다가 아래로 내려친다. 무르고 단단한 살에 푹 찔러 들어가는 그 소리! 그것은 가죽 주머니를 찢어 자르는 소리와 닮았다. 왈칵하고 무언가 뜨거운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우리에게 있어, ……아닌, ……"


누군가가 그렇게 누군가를 죽였다.

모든 것이 어렵지 않아, 본디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으로 전부터 정해진 것만 같았다.


발밑에서 스멀스멀 핏물이 새어 들어오는 듯했다.

사내는 그렇게 또 꿈에서 깬다. 짐승에게 할퀸 것 같은 눈가의 상처가 어쩐지 따끔하니 아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인데, 그럴 리가 없지. 재수 없는 일은 겹쳐 일어난다고 하던가? 꼭 좋지 않은 꿈을 꿀 때마다 환상통이 덮쳐오곤 한다. 점차, 점차 커져 오는 통각. 그리고 더욱 분명해지는 윤곽. 이 모든 게 착각일까?








자라고 난 곳을 고향이라 부르며 모두가 그리워한다고 한다면, 시온의 고향은 다름 아닌 그 저택이었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저택 뒤편의 숲이었겠지만 어떻게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듣기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길을 헤매 지친 꼴로 나무 그늘 아래에 널브러져 있더라 하더라. 의식도 없는 것을 저택의 주인이 손 더럽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데려와 보살폈다고 한다. 도통 기억에 남아 있질 않으니 남 얘기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눈을 떴고, 꼬박꼬박 주는 밥을 먹으며 일을 배워왔다.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 없으니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있을 것이나 그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할 것들로 주변이 꽉 차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우스갯소리 삼아 무정이 천성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남아 있는 정 같은 것들이 모두 충실하게 저택의 주인을 향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헤베.

분명 저택의 주인에 걸맞는 멋지고 긴 성씨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오로지 자신을 그렇게만 부르게 했다. 시온은 그 저택에 머무르는 사람들 중 가장 그에게 맹목적이었다. 그래, 길러준 정이란 걸 느끼긴 하는 모양이지. 누군가는 그리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소년은 금방 자라 사내가 되었고, 헤베를 대신하는 눈과 귀, 때로는 손이 되었다.








…어쩌면 외로운 것들이 들러붙는 것과도 같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흘러내린 촛농이 서로 엉기어 붙어 굳어지듯, 이 저택에선 모든 것이 폐쇄적이었다. 따를 법도라고 해봐야 온전히 저택 주인의 의사뿐이었으므로, 식기의 재질, 복도를 꾸미는 화병의 꽃, 정원에 심는 나무를 어디까지 다듬을지까지 모두 그의 취향을 따랐다. 주인은 까다롭게 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그 눈치를 보게 된다. '이곳은 마치 낡은 시계 같아.' 어느 날 누군가가 그리 말하자, 시온 또한 아주 틀린 비유만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저택의 밤은 금방 찾아온다. 곧 있으면 저택 창문을 덮을 커튼들이 더 두꺼운 재질로 바뀔 것이며, 조금 허술한 문을 다시 빠듯하게 고치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시온은 모두가 자는 시간에도 일어나 순찰을 돌았다. 반복되는 악몽 탓인지 도무지 침대 이불속이 달갑지 않은 탓이었다. 강박증이 있는 것처럼 모든 물건이 제 자리에 있는지, 잠금쇠는 제대로 걸렸는지 램프의 불빛에 비춰 보며 걷던 걸음이 잠깐 멈춘다. 서재의 문틈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어쩐지 발밑을 적시던 핏물을 연상 시켜, 잠시 망설이던 그가 문을 몇 번 두드리고는 그대로 열어본다. 그는 닫힌 문을 모두 열 자격을 얻었었다.



"시온."



바로 눈앞에 보이는 편한 드레스 차림의 여인에게.

마침 책장 앞에 서 있던 저택의 주인이 고개 돌려 사내를 바라본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 싶더니 그대로 책장에 꽂고,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는 것, 칼자국도, 누군가의 손자국도 남지 않은 매끈한 도자기 같은 살결을 내보이고 있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안심한다.


"이 늦은 시간까지 뭘하고 있니?"

"제가 여쭙고 싶습니다만, ……헤베."



헤베는 단둘이 있으면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이렇게 낯이 온화해지지 않는가.



"잠이 오질 않아서 말야."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 오랫동안 방불을 끄지 않고 있다며? 끙끙 앓는 소리가 문턱 너머로 들린다고들 하더구나."

"……."


아니라고 부정하려면 더 빨리 했어야했다. 시온이 속으로 제 실수를 인정하며 한숨을 내쉴 때,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헤베가 사내를 안쪽으로 들인다. 오늘은 아주 서재에서 날을 샐 생각이었던 건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찻잔이며 티푸드를 올린 그릇까지 올라 있었지만 둘 다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는 손끝이 검은 안대천 위를 훑는다. 사내는 침묵하면서도 여인을 위해 스스로 허리를 숙인다. 가끔 저택의 주인은 그 상처를 더듬어 훑으며 시온의 안색을 살피곤 했다. 무척 아끼는 것을 다루는 손짓이라, 그때마다 시온은 간지럽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정말이니?"

"……."

"왜 말해주지 않은 거야?"

"걱정하실 일이 아니니까요."



새로 살이 돋았지만, 본래의 색을 찾지 못해 도드라지는 부분을 꾹 누르면서 헤베는 짧게 한탄하듯 말한다. 참 섭섭하게두 말하는구나.

시온은 고개를 젓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었다. 사람은 때로 누군가를 위해 침묵을 지키고 싶어할 때가 있었다. 염려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일 테다. 노란 꽃을 닮은 시선으로 사내를 올려다보던 여인이 손을 떼고 물러났다. 어떻게 보면 이 저택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셈이었으나, 저택의 주인은 무례를 논하지 않았다. 단지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었을 뿐이었다.



"가끔 그런 시기가 있다고들 하지."

"그런 시기요?"

"무언가 알아야 할 게 있는 거야.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건 그런 의미지."

"……."

"혹은, 일어날 일을 미리 본다고들 하고."



헤베가 찻잔에 입을 댄다.



"큰 의미를 두진 않았는데요."

"넌 네 일에 무심한 부분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으음……."



꽃향기가 난다. 시온은 헤베가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안정을 찾고 싶을 때에 시녀 베냐를 불러 이 꽃차를 끓이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산 사람에게 그런 예언 같은 게 닿기는 퍽 어려운 일이라 하더구나."

"그러니, 처음부터 제대로 보여주질 못하는 거야. 일어나야 할 일이 제대로 들어맞는 꿈을 꾸게 되면, 그때서야 안 좋은 일들은 일어나곤 하지."

"그런 서적에도 능통하신 줄 몰랐습니다."

"어머, 놀리긴."



"시온."

"네, 헤베."

"네 꿈에선 누가 죽지?"

"……."

"……."



"…그래. 내일은 숲 경계 울타리를 다시 살펴보라 해야겠구나."

"낮에 시간이 있으니 제가 하겠습니다."

"늘 고맙지만, 이번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거야."

"……."

"그 숲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내 말을 기억해두고 있을거라 믿는단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그리고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차를 나눠준다. '자기 전에 마시렴. 깊이 잘거야. 하루 정도는 늦게 일어나도 좋잖니.' 그렇게 말하는 헤베는 이미 충분히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이어진 것은 잘 모르는 지역의 어느 전설 이야기였다. 시온은 이야기를 듣는다기보다, 말을 하는 헤베의 손짓이나 눈짓에 더 집중한다. 나비같이 팔랑이고 거품처럼 가볍게 드러냈다가 이내 금방 사그라드는 것. 피 흘리지 않고 목이 꺾이지 않은 헤베. 웃고 즐거워하는, 숨을 쉬는 헤베. 고작 며칠 반복되는 꿈으로는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 현실…….


시온은 마지막까지 거절했지만 끝내 이길 수 없어 그가 권하는 차 한 잔만을 얻어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울 즈음엔 너무 졸려 그대로 눈을 감았던 것도 같다.





꿈을 꾼다.

이번에도 누군가를……. 아니.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하늘하늘한 원피스 잠옷을 입은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평온하게 오르락거리는 가슴팍. 고요하게 가라앉은 숨소리. 자신은 무릎부터 누르듯 그 위에 올라탔다. 체격으로 보아 바로 눈치채고 눈을 뜰 것 같은데도 여자는 계속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발밑에 찰박이는 물소리가 들린다. 구멍 하나 없는지 빠짐없이 살펴보고 겨울 찬바람 들지 말라고 그리 공을 들여온 방에.



"깨어나면 꿈이고,"



누군가 그리 속삭인다. 제 의사와도 상관없이 모든 일은 진행되었다. 제 큼직한 손이 헤베의 가느다란 목을 감싸 쥔다. 체온이 낮아 늘 식은 인형 같았던 몸 위에, 체온이 높아 불덩이 같을 제 손가락 하나하나가 감긴다.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고 싶지 않아. 이번만큼은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 시온은 헤베의 몸이 얼마나 무른지 알고 있다. 하는 것은 정원 산책, 해봐야 책 읽는 것이 전부인, 저택 안에서 하루하루 삭아 들어가는 것 같은 여자. 검고 어두워 꼭 밤하늘을 닮은 여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쉽게도 바스러진다.


"이 모든 건,"



사내는 그렇게 꿈에서 깬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뜨자 벌써 해가 어둑해질 시간이었다. 얼만큼 잔 거지? 그럴 수 있나? 하고 의문을 품기도 전에 구역질 비슷한 것이 올라올 것 같았다. 제 손 아래 무언가 부러지는 감각을 분명히 느꼈다. 더없이 간단하여 싱겁기까지 하던 순간…….

쾅! 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는 걸 알고 나서야 시온은 고개를 든다. 분주히 뛰어다니는 발소리. 아가씨, 어디 계세요? 하고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목소리. 문을 열었다가 닫는 소리. 소리. 소리.



"……!!"



안대 천을 집어 들어 오랜 흉터를 가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붙들어 상황을 묻지도 않고 바로 저택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 지독하게 풀 향이 짙고 그늘이 드리워져 음산한 곳. 시온이라는 인간의 시작. 이유도 없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도 누구도 크게 이상하게 반응하지 않았었다. 왜 그것에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새로 장만해둔 티가 나는 울타리가 걷어차이고 밟혀 볼품없는 꼴이 됐다. 아주 침입을 막으려 했다면 조금 더 공을 들였어야 했을 것이다. 시온은 그대로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숲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는 당부는 어렸을 때부터 몇 번 들어왔다. 저기에 좋은 추억 같은 게 남아 있을 리도 없으니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흙길을 밟고 나뭇가지들을 부숴가며 미친 사람처럼 헤맨다. 습한 공기. 식물 같은 것이 썩어 문드러졌고, 달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 숲. 마치 상처 입은 사자가 달려들듯이 그렇게 계속, 계속 달리고 달려 안으로 들어가면, 거짓말같이 나무들이 거둬지고 검게 보이는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누군가 또한.



"헤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겨우 속삭인 것뿐인데도, 물 찰박이는 소리를 내던 헤베는 용케도 알고 뒤돌아본다. 눈이 마주친다. 시온은 이것 또한 지독한 꿈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참 그리 물끄러미 보던 헤베가 느리게 웃는다. 그리고는 입 모양으로 속삭인다. 어떤 것의 뒷말. 끝까지 듣지 못했던 마지막 말을 전하듯.





'우리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거야…….'



그리고는 갈 길을 가듯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모든 것이 어렵지 않아, 본디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으로 전부터 정해진 것만 같았다.

한 걸음 더 쑥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바닥이 푹 꺼진 것처럼 물에 잠겨 든다. 시온은 더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물에 푹 젖어 늘어진 저택의 주인은 시온의 품에 안겨 돌아온 후에도 눈을 뜰 기색이 없었다. 사용인들이 몇이나 달려들어 급하게 그 몸을 닦이고 안으로 들여 방을 데웠다. 시온은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느리게 고개를 든다. 처음 꿈에선 내가 죽었다. 두 번째 꿈에도 내가 죽었다. 세 번째 꿈에도 내가 죽었…….


…….



손자국이 드러나는 목가를 보는 순간, 시온은 모든 피가 발 아래로 흘려 모조리 빠져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손끝이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사실 그 모든 순간, 죽는 것이 당신이었다면.

그저 올바른 장면을 드러내기 위해 반복했던 것에 불과했더라면, 마치, 꽤 오래전부터 이미 정해진 것과 같은 거였다면…….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는 당신에게 누군가 죽는 꿈을 꾼다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전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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