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작 고딕호러
- 2021년 10월 30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0월 31일

14살의 차가운 바람이 부는 12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집보다 오래된 곳이라는 것은 들었지만, 그보다도 평소에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듯 낡은 곳이더군요. 어머니는 음산한 분위기가 난다며 싫어하셨지만, 아버지가 이 저택을 구하기 위해 오래 노력하셨다는 걸 알고 있어 이 저택이 싫지는 않습니다. 어머니도 부디 이 저택을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저택이 음침해 보이는 건 저택이 오래 비어있었던 탓이겠죠. 3년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들었으니, 청소하고 보수할 곳이 참 많겠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이곳까지 내려오게 된 만큼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주 길어지겠습니다. 보수가 모두 끝나야 아버지가 새로 일을 구하실 수 있을 테니, 저도 그 보수를 열심히 도와야겠죠. 부디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에 끝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밤이 되자 새로운 보금자리를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저택 안으로 들이지 못한 짐이 젖을까 서둘러 안으로 옮기는 일은 조금 곤란했습니다만, 그래도 저택 근처를 빼곡 채운 침엽수림에 큼직한 눈송이가 소복하게 앉은 것은 제법 운치 있는 경관이었습니다. 이 오래된 저택은 손이 많이 가겠지만, 그만큼 돌본다면 아름다운 모습을 할 것 같습니다. 추위에 기침을 멈추지 못하시던 어머니도 눈이 쌓인 침엽수를 보고는 감탄을 하셨으니까요.
다만, 저택이 노후한 탓일까요.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지자 저택에는 이상한 울음소리가 흘렀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온 짐승일까 봐 조금 긴장했습니다만, 그저 지하실의 배관이 낡고 녹슨 탓에 저택 안에 소음이 퍼지는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날이 밝으면 마을에 내려가 보수에 필요한 것들을 주문해야겠다고 일찍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아무래도... 이 저택이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14살의 다가오는 연말처럼 눈 내리는 12월,
처음 저택에 들어선 날부터 내리던 눈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습니다. 벌써 3일이 흘렀는데도 큼직한 눈송이는 멈추지 않고 내려 저택 인근의 침엽수림은 온통 새하얀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경치에 감탄하면서도, 창가에 서면 길게 느껴지는 추위에 금방 저택 깊은 곳으로 물러서게 됩니다. 저택을 아직 제대로 보수하지 못한 탓일까요. 이 저택은 유독 서늘한 기운을 지닌 것 같습니다.
내내 눈이 내린 탓에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온통 얼어붙었습니다. 마을로 내려가 물품을 새로 주문해야 하는데, 언제쯤 눈이 그치고 얼어붙은 길이 녹아내릴지 걱정입니다. 그나마 낮에는 이삿짐을 정리하고 집을 청소하느라 춥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저녁이 되면 유독 저택이 추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는 그 추위에 지난 3일간 제대로 잠들지 못하셨습니다. 이불을 모두 꺼내 덮어도 배관이 녹슬고 나무 바닥에는 구멍이 난 탓에 차가운 바람이 드는 것을 막지는 못한 탓인 것 같습니다.
지난 3년간 이 저택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적어두었던가요. 그 탓에 이 오래된 저택에는 새로 보수하고 정리해야 할 곳이 아주 많다는 것도 말입니다. 확실히 지하실의 배관은 녹슬었고 찬 바람이 불면 배관을 통해 울어 기이한 소리가 저택을 가득 채우더군요. 하지만, 새벽 중에 배관의 울음소리 뒤를 잇따른 다른 울음소리는...... 어쩌면 다른 배관 쪽에도 문제가 있겠습니다. 아니면 나무 바닥이 너무 들떠서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걸 수도. 아버지께 말을 드려야겠습니다.
정원에도 함박눈이 가득 쌓여 발목까지 차올랐더군요. 오늘은 그마저도 얼어붙기 전에 빗자루를 들고 정원으로 나섰습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목 위로 폭 간질이는 감촉이 신기하더군요. 이전에 지냈던 곳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삭막한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침엽수림이 울창하고 눈이 발목까지 닿는 곳에서 머물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얇은 빗자루 하나로 눈을 쓸어내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아버지가 도와주신 덕에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봄이 되면 잡초를 정리하고 정원을 정돈해야겠죠. 안방 창문에서는 이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니, 그때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장미를 한 아름 심어야겠습니다. 그때는 이 저택도 화사해져 있기를 바랍니다.
15살의 새해를 맞아 따스한 1월,
오늘은 한겨울임에도 날이 따스했습니다. 한참을 내리던 눈은 이제 그쳤고, 얼어붙었던 길목도 따스한 온기에 녹아 오늘은 마을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목은 한 번 얼었다가 녹아내린 만큼 굉장히 질척거리는 상태가 되었더군요. 장화를 신고 잘은 보폭으로 걷는 일은 제법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걷기 어려울 만큼 질척이는 길을 걷는 동안 아버지가 계속 손을 잡아주셨기에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이사를 온 저희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 방문하는 가게마다 ‘그 저택에 이사 온 가족인가요?’하고 물어보시더군요. 조금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 큰 마을이 아니었으니, 저택을 구매하고 짐을 옮기면서 자연스레 소문이 돌았던 걸까요? 필요한 물건이 많아 바쁘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마을을 둘러볼 때,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마을 지도를 받고 상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누어주셨던 빵도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목재와 배관 부품 등을 사러 간 곳에서는 저택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셨던 건지 보수 여부를 함께 고민해주기도 하셨습니다. 덕분에 계획했던 것보다 장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다행히 다른 분들이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셔서 해가 지기 전에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쌓인 눈이 남은 정원을 보시고는 봄이 오기 전에는 제초기를 빌려주시겠다고도 씀하셨답니다. 저녁 식사 내내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내내 이야기했으니까요. 어머니도 조금 더 날이 따듯해지고 몸이 나아지시면 함께 마을로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조금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의문스러운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에 빵을 나누어주셨던 아주머니도, 무거운 목재를 함께 옮겨주시던 아저씨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왜 그런 귀신들린 저택에 이사를 오게 된 건가요?” 하고 말입니다. 귀신들린 저택이라니, 조금 오래되고 사람이 살지 않아 어두운 분위기를 가지긴 했지만 그런 곳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버지는 들어보았던 이야기인지 주제를 넘기시며 제 귀를 가려주셨습니다. 아마 듣지 않기를 원하셨겠죠. 이미 마을에서 아주머니에게 들었지만 말입니다.
이 저택은 아주 예전부터 귀신이 들렸다고 유명했다고 합니다. 처음 그 저택에서 살던 가족들은 부인이 병들어 죽고 남편이 미쳐 끝내 아이마저 죽어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저택에 든 어떤 사람들도 1년을 다 버티지 못하고 저택을 떠났다고 말이에요. 저택에서는 밤이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 귀신을 목격한 이들도 몹시 많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여태 아무도 목격한 적 없지만 말입니다.
아버지가 불편해하시는 듯하여 저는 아무거도 듣지 못한 척했습니다만, 그래도 조금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배관의 녹슨 소음 뒤로 따라오던 작은 울음소리는 혹시......
이런, 오늘의 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필요한 것들을 사 왔으니 내일부터 아주 바빠지겠습니다. 어서 잠들어야겠군요.
15살의 마지막 2월을 보내며,
한동안 바빠 제대로 일기를 적지 못했습니다. 이사를 마무리 짓기 위한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더군요. 일기장을 한참 방치하고 말았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깊은 추위도 가실 무렵이 되었습니다. 이 저택에 처음 도착했던 건 분명 한참 겨울의 바람이 차갑던 시기였을 텐데, 이제는 그 끝자락을 보고 있다니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문했던 명패가 드디어 도착해 대문 앞에 명패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저택이라고 불리던 이 집도 다시금 ‘코르피온 저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명할 수 있게 되었군요. 이사를 하고서 시간이 꽤 빠르게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명패를 붙인 이제야 정말 이사를 마쳤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닙니다. 드문드문 눈이 내리는 동안 침엽수림은 밤이 되면 달빛마저도 가려 저택을 보수하는 속도가 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지하실의 배관은 전부 고쳤지만, 아직 조금 무너진 나무 바닥이나 잘 사용하지 않는 곳의 배관은 여전한 상태입니다. 그나마 주로 사용하는 곳은 전부 보수를 마쳐 온기가 흩어지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겠죠. 다른 곳은 봄이 되면 차근히 고쳐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봄이 되고 그간 들춰보지 않았던 방을 열어 정리해야 할 때가 되겠군요. 최근, 정말로 이 저택에 귀신이 사는 것은 아닐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정원을 정리하거나 산책을 하며 저택을 올려다보면 수상한 그림자를 목격하고는 합니다. 여전히 밤이 되면 아이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그걸 전부 착각일 거라고 하셨지만, ... ...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 이 저택을 향한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지하실의 배관을 다 고쳤는데도 여전히 밤이 되면 들려오는 울음소리 때문일까요. 봄이 되고 배관을 모두 고치면 이런 의문도 모두 눈처럼 녹아내리게 될까요.
이 일기를 적는 지금에도 다시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만약 이 원인이 귀신이라면, 대체 왜 이 저택에서 내내 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 울음소리가, 귀신의 존재가, 어머니께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머니의 건강이니까요.
15살의 차가운 3월,
정원에 소복하게 쌓였던 눈이 모두 녹아내렸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는 녹아내린 눈에 젖어 축축하게 늘어져도 이미 길게 자라 발목을 간질이더군요. 눈이 모두 녹아내리고 어느덧 미풍이 불어오는 지금, 저는 아버지와 함께 이틀 동안 정원의 잡초를 뽑고 화단을 정리했습니다. 잡초를 모두 뽑고 죽어버린 풀을 정리하고 나니 어둡게만 보이던 저택이 제법 넓고 환해 보이더군요. 저택 근처에는 아직 싹이 돋지 않았지만, 마을을 내려가면 푸른 새싹이 돋아난 게 보입니다. 아마 우리의 정원에도 머잖아 새로운 싹이 나오겠죠. 그렇게 되면 드디어 봄일 겁니다. 날이 풀리면 어머니의 건강도 더 나아질 게 분명합니다.
저택에 남아있던 보수도 얼마 전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는 밤이 되면 울음소리가 더 들리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울음소리가 배관을 타고 부모님이 머무시는 안방까지 타고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안방과 조금 거리가 있는 제 방에는 아직 그 울음소리가 들려오고는 합니다. 아버지는 귀신의 이야기를 꺼리시고, 어머니는 귀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는 듯하여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사실, 오늘은 일기장을 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머무는 방은 안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안방은 2층 가장 안쪽에 있고, 제 방은 안방에서 욕실과 서재를 지난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 방의 위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다락방이 하나 있는데... 아마도, 그곳에 그 귀신이 사는 것 같습니다.
천장 위에서 들려오는 가냘픈 울음소리, 누군가 가구에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음, 간간이 들려오는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나 당황한 사람의 목소리. 귀신에 대한 소문을 지나치게 신경 쓴 것일까요. 이런 것도 착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내일 밤이 되면 그 다락방에 확인하러 가봐야겠습니다. 혹시라도 악한 귀신이라 제게 문제가 생긴다면 이 일기장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5살의 보름달이 떠오른 3월,
그를 만났습니다. 아마도, 제가 미친 게 아니라면, 악마나 귀신에게 홀려서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귀신에 대한 소문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은 적은 없었습니다. 근원을 설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존재란 보통 어떠한 오해와 착각, 그리고 두려움이 섞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러니 아마도, 제가 단단히 미치거나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면 그 존재는 실재하는 이가 맞을 겁니다. 생명이 아닌 ‘귀신’이란 존재로 말입니다.
부모님이 모두 잠자리에 드신 뒤, 저는 혼자 3층의 다락방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귀신의 존재는 믿지 않았으니, 느껴지는 인기척이나 말소리는 그저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오기 전부터 몰래 살아가던 노숙자나 괴한 정도일 거라 여겼습니다. 적당히, 몰래, 소음의 실체를 확인하고 날이 밝으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사람을 불러올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라고 지칭해도 되는 존재가 맞을까요. 달빛을 맞아 보랏빛을 띠는 머리나, 시선이 마주치자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놀라던 시선, 그 안에 검고 푸른 눈.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불투명한 몸체와 흐린 발끝이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볼 수 없을 텐데, 죽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살아있는 이처럼 느껴지는 존재도 있던가요.
그는 눈이 마주치자 인간보다도 더욱 당황하고 놀라 한참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정리되지 않은 짐 뒤로 몸을 숨기며 울어버리더군요. 귀신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걸까요. 그가 지난 겨우내 저택에 흐르던 울음소리의 주인인 걸까요. 어째서 귀신이라는 상태로 머무는 것일까요. 정말 귀신이 맞는 것일까요? 묻고 싶은 것이 많고, 알아내고 싶은 것은 끝도 없었지만, 그는 지나치게 당황하여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엇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손수건을 바닥에 내려두고서 다락방을 벗어났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기록을 남기는 지금에도 방금 보았던 것이 꿈처럼 느껴지는데, 여전히 천장에서부터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아 겨우 현실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충격이나 공포보다도 놀랍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군요. 어쩌면, 조금의 흥미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내일 밤이 되면 다시, 다락방을 방문해야겠습니다. 그는 그리 악한 귀신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손수건을 되찾기 위해서, 라고 적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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